오래된 도심 속 친환경 자연형 어린이 놀이공간
– 산마루 놀이터

개요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23-350외
- 용도: 어린이 도서관, 놀이터, 전망 공원
- 대지면적: 2,220m2
- 건축면적: 815.75m2
- 설계담당: 이민기(조진만건축사사무소)
- 협력사: 임옥상, 조경작업소 울
- 기간: 2016∼2018년
- 발주청: 종로구청
- 수상: 2019 대한민국 국토대전 대통령상
프로젝트의 시작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산마루 놀이터' 조성 프로젝트는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지역 친환경 자연형 놀이터'라는 명칭으로 종로구청 녹지과에서 서울시 공공건축가 5인을 대상으로 2016년 7~9월 동안 진행된 지명 설계공모를 통해 시작되었다. 설계공모는 예술과와 조경가의 컨소시엄을 조건으로 하고 있어 '조진만건축사사무소 + 임옥상예술연구소 + 조경작업소 울'이 한 팀으로 설계공모에 참여하였다.

대상지는 약 2,200m2 규모의 창신동 23-350외 총 네 개의 필지였으며, 예산은 토목, 건축, 조경 및 놀이시설 공사를 포함하여 총 20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프로그램은 지상부의 창의적인 놀이시설과 지하 공간의 어린이도서관 및 다목적홀로 나뉘며 설계공모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았다.
- 창신숭인 도시재생선도지역 내 주변 재생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자연형 놀이터로 조성한다.
-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 여건을 살려 특색있는 자연형 놀이터로 조성한다.
- 유아·어린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하고, 자발적 체험활동을 돕는 시설을 배치한다.
- 놀이시설물은 기존의 틀에 박힌 기성제품이 아닌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시설물로 제작되어야 하며 이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적합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 연령별, 계층별 다양한 주민 의견수렴 및 주민 참여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운영한다.
-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중물 프로젝트와의 연계를 고려해야 한다. 마중물 사업으로는 주거환경재생, 봉제재생, 관광자원화, 주민공모, 도시재생마을학교(마을배움터), 주제공모가 있으며 각각의 사업을 면밀히 검토하여 우리 공간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하여야 한다.
기획 배경
창신동 언덕의 한 곳에 자리한 부지는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여 있지만 가파른 도로와 밀집된 주택가로 인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이외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재개발로 인한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해제되어 소규모 어린이공원과 도시텃밭 및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부지였다. 서울시는 2015년 2월 26일에 해당 부지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창신숭인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하고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고시하여(서울특별시 고시 제2015-54호) 보다 균형 있고 아름다운 창신동 마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에 종로구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자연형 어린이놀이터'를 만들고자 하였다.
도시재생사업의 비전은 '낙산과 동망봉을 품고 흐르는 행복마을 창신숭인'으로 크게 주거환경재생, 봉제재생, 관광자원화의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산마루 놀이터 사업은 그중 주거환경재생의 푸른마을 가꾸기 분야에 속해 있으며, 다른 도시재생사업의 목표와도 조화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친환경 자연형 어린이놀이터'는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 여건을 살려 내어 특색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되어야 하며, 유아 및 어린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배치되어야 했다. 또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야 했다. 이에 서울의 맑은 바람과 높은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서울시의 옥상인 창신동, 바로 이곳에서 아이들의 웃음과 행복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공간을 재탄생하고자 하였다.

설계 의도
건축가로서 다양한 종류의 시설을 설계하고 있지만 항상 가장 크게 고민하는 공간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다. 비단 놀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시설의 경우에도 어린이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면 항상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공간을 담아내려고 애쓴다. 종로구 창신동의 '산마루 놀이터', 은평구 신사동의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고가 하부의 '다락옥수'까지 규모와 용도는 매번 달랐지만 각 시설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어린이였다. 또 일관된 주제는 자연과의 대화, 경계 없이 열리며 연속된 공간, 그리고 목적 없이 비워진 장소를 곳곳에 만드는 것이었다. 건축가가 건물의 모든 곳에 대하여 '이렇게만 사용하라'고 확정해 버린다면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숨이 막힐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내버려진 장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매번 이러한 의도는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애매함과 경계 없음은 잠재적 사고의 유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간에는 갑자기 생뚱맞은 난간이나 커다란 화분이 들어서게 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에 관심이 지대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는 달리 아이가 개성과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발상을 모두 배제하고 철저하게 관리된 환경에서 마음껏 뛰놀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마음껏 뛰놀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자기 관리 능력을 체득할 수 있을까? 과잉보호 속에서 과연 살아 있는 긴장감,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력이 키워질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불행은 일상 속에서 자신의 뜻대로 마음껏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과 장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여기저기에 공터가 있었고 가까운 곳에 산과 들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어른들이 정해준 규칙이나 틀이 전무한 그곳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궁리하면서 놀이거리를 만들어 내고, 가끔은 다치기도 하며 건강하게 성장하였다.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고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아픔이 뒤따른다는 것도 체득하였다. 우리는 지금 '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을 구획된 놀이터에 가두고 있다. 이는 과보호의 테두리 속에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립성을 저해하는 일이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활동 공간인 '틈'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틈'이란 한자로 사이 간(間)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건축은 인간(人間)이 앞으로 보낼 시간(時間)을 위한 공간(空間)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사람들 사이의 틈', 시간은 '순간 사이의 틈', 공간은 '관계 짓기를 위한 틈'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이러한 중요한 '틈'들을 얼마나 의미 있게 채우며 살아갈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창의적 놀이터는 아이들이 틈을 찾아내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약간은 위험한 곳일수록 호기심과 모험심이 자극된다. 아이들은 놀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해 나간다. 도시와 사회의 다양한 틈 사이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고 시행착오를 맛보면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놀이터들이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1970년대에 아파트가 도입되면서 「주택건설촉진법」에 “어린이놀이터는 최소한 그네, 미끄럼틀, 철봉, 모래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라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안전과 위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바닥의 모래가 고무 소재로 바뀌었다. 형식 승인을 쉽게 받기 위하여 놀이시설을 공급하는 업체에 의해 설계라기보다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어린이놀이터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력이 무한히 커질 리는 만무하다.
창신·숭인 일대는 낙산 자락에 있는 성 밖의 마을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채석장이 자리 잡아 자연경관이 훼손되었고, 한국 전쟁 이후에는 봉제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한때는 국내 봉제 산업 1번지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소위 '달동네'라고 불리는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2018년에 이 지역의 공용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 산마루 놀이터가 설계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 예술가 임옥상 선생과 공동으로 설계한 이 놀이터의 특징은 미끄럼틀, 시소 등의 흔한 놀이기구를 전혀 두지 않는 대신에 흙, 모래 등을 만지며 놀이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숨 가쁘게 헤쳐 온 지난 근대화 시절에 창신동 골목을 가득 채운 것은 재봉틀 소리였다. 당시에 어머니들은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낀 골무가 낡도록 바느질을 하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래서 이를 기억하기 위해 산마루 놀이터에는 골무 모양의 구조물이 거대한 정글짐과 어린이 도서관을 품고 있다. 이곳은 책을 읽는 공간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작품 전시회, 학습 발표회 등의 다양한 행사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놀이와 학습에 경계를 두지 않고 이 두 가지가 서로 연속된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또 입구에는 “작게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놀이터 사용법이 적혀 있기도 하다. 아직도 우리 도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모든 것이 딱딱하기만 하다. 이들의 주체성과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다양한 '틈'에 대한 시도가 더욱 다양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설계/시공 과정의 주요 사항
공모지침에서는 당선된 후 2개월의 실시설계를 거쳐 착공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여러 심의 일정 등을 고려하면 도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 무리수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설계는 공모 기간을 제외하고도 약 5개월 넘게 진행되었다. 비교적 소규모 프로젝트임에도 시공 단계에서 설계자는 감리자의 역할을 맡지 못하고 각종 민원이나 시공상의 애로 사항으로 설계 변경이 필요할 때만 간헐적인 자문 역할을 하는 것에 머무른 것은 전체적인 설계 의도의 구현이나 시공 품질의 확보 측면에서 어려움으로 작용하였다.
원래의 설계안에서는 서로 레벨이 다른 주변과 연결되는 사방이 열린 놀이터를 계획하였다. 하지만 부지 서측에 인접한 주택 거주자들의 민원으로 인해 놀이터 공간의 한 면이 닫힌 채로 완성된 것은 못내 아쉽다. 또 서울시의 요청으로 북측의 층층이 구성된 주차장 부지의 상부에 녹화 데크를 설치하여 주차장을 유지하면서도 상부에 입체적 공원을 꾀하는 제안도 설계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제안하였으나 결국 현실화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게다가 임옥상 선생이 계획한 창의적인 무한의 정글짐은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의 엄격한 규제로 기존의 형식 승인을 받지 않은 방식에 대해서는 일말의 여지도 허락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그 규모나 형태가 많이 축소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유형화되지 않은 창의적인 놀이터의 조성 방향에 있어 사회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