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공공건축가에게 지역 공공건축 이야기를 듣다
- 최신현 전주시 총괄조경건축가 -
이번 특집기사는 '총괄·공공건축가에게 지역 공공건축 이야기를 듣다' 시리즈로, 초대 전주시 총괄 조경건축가인 최신현 ㈜씨토포스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최신현 총괄조경건축가는 2019년 4월에 위촉되어 곧 3년의 임기를 마무리할 예정이며, 2020년 1월부터는 서울시 강동구 총괄계획가로도 활동해 오고 있다. 본 인터뷰에서는 전주시 총괄조경건축가로서의 역할 및 성과와 함께 민간전문가 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개선 사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주시 '총괄조경건축가'로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평소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민간에서 의뢰받아 작업하는 공간은 대부분 제한된 영역의 공간이고 또 작은 공간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공공공간은 원하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공공공간의 가치나 질을 높이는 작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서서울호수공원과 같이 규모가 큰 공모전에도 참여하게 되었던 거고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그런데 총괄건축가라는 제도는 건축을 전공하신 분들이 많이 참여하다 보니 조경 분야와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건축을 중심에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간을 조성하는 데에 있어 조경가도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전주시의 경우 시장님이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달랐어요. 전주시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정원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보니 먼저 총괄조경가가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처음에 저에게 총괄조경가를 맡아 줄 수 있겠느냐고 의향을 물으셨을 때, 제가 총괄조경가로서 도시를 다루려면 시장님과 몇 번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몇 차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굉장히 매력적인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미약하나마 돕겠다고 했죠.
그런데 전주시에서 막상 총괄조경가를 위촉하려고 하니 관련 근거가 없었어요. 「건축기본법」에 민간전문가의 참여를 규정하고 있지만 민간전문가로서 총괄조경가라는 제도를 막상 두려 하니 기존에 관련된 내용이 없어 새로 조례를 만들어 의회에 올렸어요. 의회에서는 총괄건축가라는 제도가 이미 있는데 왜 총괄조경가를 또 두려고 하느냐며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분들을 설득해 총괄조경가를 총괄건축가보다 먼저 두게 된 것이지요. 제가 총괄조경가로 임명된 다음 의회에서 특강을 했는데 제 강의를 들은 의원들이 총괄조경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공감을 하시면서 그때부터 조금씩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어요.
3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시장님께서 총괄건축가를 별도로 두게 되면 전체적인 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니 저에게 총괄건축가도 같이 겸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제가 조경을 전공하긴 했지만 건축과 수업도 대부분 신청해서 들을 정도로 예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어요. 공간을 다루려면 건축이나 토목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늘 관심이 있었지요. 제가 건축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경험해 본 적도 있고 건축이 별개의 분야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님이 총괄건축가를 맡아 달라고 하셨을 때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서 총괄조경건축가로 활동하게 된 거죠.
전주시는 천만그루 정원도시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중점적으로 추진하신 내용은 무엇인가요?
<정원도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1년간의 소통 과정>정원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에 대해 시장님과 처음부터 공감했던 점이 시장 임기 동안 예산을 들여 정원같이 보이는 공간을 많이 만든다고 정원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저는 시민들이 정원이 무엇인지, 꽃이 무엇인지, 정원도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마련된 다음에 우리 도시가 정원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밑바탕이 만들어지고, 전주시의 공무원들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원도시에 두고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1년 정도는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강의도 하고 지역 전문가들과 만남을 가지며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초반에는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공무원들에게 정원도시가 무엇이고 공공건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소통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어요. 시장님께서 제가 만든 일정대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인정하시고 도시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사업에 대해 자문하도록 지원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1년 동안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전주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 시간이 저에게는 소중했고 그 시간으로 인해 이후에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또한 굉장히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살아 있는 식물을 존중하는 도시>
보통 도로 공사를 할 때는 차도와 보도 공간까지 석재를 넣고 그 위에 아스팔트를 깔고 보도를 만들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가로수를 심어 놓은 아래쪽에 60∼70cm까지는 전부 다 돌이고 제대로 된 지반이 아니에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빗물이 전부 도로 쪽으로 배수되다 보니 가로수가 시들시들한 것이지요. 또 전주시의 경우 가로수를 거의 쥐똥나무로 심어 놓아 계절별로 다양성이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 곳이 건강하지 않으면 보이는 곳이 건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길마다 60cm 깊이의 땅을 다 들어냈어요. 땅속에 빗물이 스며들도록 하여 지하수가 항상 유지되도록 해 주고 미생물도 생겨 식물의 뿌리에 도움이 되도록 했어요. 공무원들에게 하나를 심더라도 땅을 제대로 만든 다음에 제대로 심으면 식물이 잘 자란다고 교육했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공무원들도 6개월 정도 지나 식물들이 너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나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예산은 적게 들고 가로의 다양성은 훨씬 더 좋아졌지요.
저는 '살아 있는 식물을 존중하는 도시가 정원도시'라고 생각해요.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식물의 입장에서 도시 가로에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해요. 높은 건물 때문에 항상 음지인 공간이라면 음지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심어 주면 식물들도 정말 잘 자리 잡고 기쁘게 자랄 수 있어요. 또 가로 공간이나 경관에도 변화가 필요한데 우리는 무조건 가로 공간에 가로수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카페가 있는 가로 공간이라면 예쁜 나무를 심고, 건물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면 그 앞을 비우고 가로수가 없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지요. 이 같은 방식으로 도시의 틀을 계속 바꾸어 나가고 있어 몇 년 지나면 전주시의 모습이 더욱 많이 달라질 거예요.

시민들이 이러한 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정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직접 참여해서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동네들이 바뀌고 있어요. 시민들이 공공공간을 시에서 관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정원 놀이를 하는 놀이터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거죠. 정원도시라고 하면 정원사가 필요하잖아요. 전주시에서는 비전공자인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초록정원사' 교육과정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정원사 수료증을 받을 수 있어요. 전주시에서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의 식물을 제공해 주면 이분들이 동네의 자투리 공간에 정원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주로 골목에 식물들을 심다 보니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 무슨 일인지를 묻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이처럼 동네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깐 전주시 전체의 가로가 바뀌어 나갔어요.
시민들이 이를 보고 도시가 정원화 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이분들이 공원을 정원으로 꾸미는 일도 하게 되었어요. 공공공간인 공원은 큰 나무들로 녹지가 잘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녹지의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았거든요. 그러한 공원의 녹지 일부를 이분들이 정원으로 꾸몄어요. 공원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예전에는 나무만 크고 별로 볼 것도 없이 잡초만 있었던 공간이 어느 순간 계절별로 꽃이 피는 것을 본 뒤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식물 구입비는 전주시에서 지원하는데 500만 원어치만 사더라도 양이 어마어마해요. 사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은 엄청 많지요.
제가 정원도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강의도 많이 하다 보니 변화의 기반이 구축되고 시민들의 인식도 점차 달라졌어요. 시민들이 식물과 정원도시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이 지속적인 변화의 바탕이 되는 거예요. 저는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처음으로 전주시에서 정원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민간이 시민 정원을 만들 수 있도록 공모를 했었어요. 시민들이 20명씩 그룹을 만들어 공모에 지원하고 당선된 그룹들은 1,000만 원, 1,500만 원, 2,000만 원 이렇게 지원을 받아 전주시에서 제공해 준 자투리땅에 또 열심히 정원을 만들었어요. 그러한 것들이 점점 도시의 정체성이 되어 가고 있어 감사하고 보람돼요. 올해도 2회째 정원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시민들이 자기 동네에서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등 아주 적극적이에요.
<지속 가능한 도시>
전주시에서 건축하는 분들과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은 공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최대한 지속 가능한 재료로 쓰자는 것이었어요. 인조 재료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교체해야 하는 재료가 아니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며 오래가는 재료를 쓰자는 기본적인 룰을 만들고 그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었어요. 색칠하고 덧칠해서 무언가를 더 보태어 만들지 않고 원래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색감이나 질감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전주시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강하기 때문에 도시에 쓰이는 모든 재료들, 작게는 바닥 포장재까지 신중하게 자문했어요.
일은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진행했어요. 구도심의 경우에는 재생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과거 영주시 총괄건축가 경험이 있는 조준배 씨를 도심재생 전문 총괄건축가로 위촉하고 저와 함께 도시의 기본 골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규모가 큰 건축 프로젝트들은 평소에 제가 관계를 맺어온 여러 건축가들을 프로젝트 총괄건축가(MP)로 위촉하여 해당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맡기고 종종 저와 함께 소통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종합운동장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롯데와 MOU를 맺고 일부 부지에만 롯데백화점을 조성하는 것으로 협의하였는데, 그 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역사성이 굉장히 좋아 어떻게 하면 쇼핑공간과 공원을 함께 조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마스터플랜부터 이민 선생님이 맡아 주셨는데 현업에서도 저와 함께 협업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 소통이 잘 되고 기본 마인드도 같아서 진행이 잘 되었어요. 또 한옥 마을 안의 건축 형태에 대해서는 또 다른 건축가에게 MP를 맡기고 1여 년 동안 함께 진행해 나갔었죠.
정원도시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민의 숲 1963>원래 종합경기장, 축구장, 야구장 및 주차장이 있었거든요. 부지 일부를 롯데에 주고 호텔과 컨벤션이 함께 들어가 경기장과 야구장도 살리면서 전주시립미술관도 짓는 시민의 숲으로 계획되었어요. 시민 참여단을 통해 많은 의견이 들어왔고 계속 모니터링을 하면서 마스터플랜 작업을 해나갔어요. 지금 마스터플랜은 다 끝났고 1단계 설계‧시공에 들어가 있는 상태예요. 올해 말에 1단계로 정원의 숲이 조성될 예정이에요.

덕진공원은 전주시에서 역사가 깊은 전통성이 강한 공원이에요. 그 옆에 연꽃이 아름답게 조성된 10만 평 정도 되는 연못이 하나 있어요. 그곳에는 오래된 콘크리트로 된 팔각정자와 현수교(보행교)가 있었는데 지은 지 오래되어 철거한 뒤 새로 현수교를 만드는 것으로 제가 위촉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어요. 공사비가 50억 원 정도 되는 공사인데 교량 설계와 시공업체도 정해진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현수교가 위아래 공간을 나누어 사람이 연꽃과는 전혀 상관없이 위로 지나가게 계획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시장님께 말씀드려 다시 한번 계획안을 검토해서 사람들이 연꽃 사이로 걸어 다니면서 전통성과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시장님도 그렇게 하자고 하셨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요. 제가 담당과와 시공업체와의 협의를 통해 계획안을 수정할 수 있게 되어 이번 기회에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으로 해석된 교량으로 다시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시공업체에서 동의해 주었어요. 그래서 다시 설계하고 만들었는데 바로 연꽃 옆으로 다닐 수 있게 되어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3층짜리 콘크리트로 된 매점 건물인 연화정이 마음에 걸렸어요. 이것도 시장님께 “제대로 된 한옥 하나 딱 들어서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시민들에게 투표를 받아보자고 제안했어요. 다행히 시민들이 찬성해 주어 연못 가운데에 정말 예쁜 한옥을 만들어 도서관으로 사용하려고 지금 막바지 공사 중에 있어요. 직접 방문해 보면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공사가 끝나고 시공업체도 정말 만족스러워 했어요. 저는 이것이 바로 총괄건축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금암광장은 애초에 교통섬으로 설계되었던 곳을 광장으로 만든 사례예요. 제가 갔을 때는 이미 교통섬을 만들고 차들이 그 양쪽으로 다닐 수 있도록 공사를 시작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들어가기 힘든 폭인데다 그 안에 사람들이 머물러 있기 어려운 교통섬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교통섬으로 설계된 공간을 도로 한쪽으로 붙여 교통 체계를 아예 제대로 바꾸어 주자고 제안했지요. 당시에 이곳에는 빈 상가가 많고 상권이 굉장히 안 좋았어요. 그런데 광장이 조성되면서 상가 임대가 다 나갔고 시민들도 매우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지요. 여기에도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했는데, 원형으로 디자인된 벤치는 50년 가는 목재로 만든 거예요. 색칠도 하지 않고 유지 관리도 필요 없어 그냥 재료 그대로의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는 거죠. 식재의 밀도도 낮추고 버스 쉘터도 여기에 맞게 디자인해 주었어요. 별도의 설계비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스케치를 하고 그걸 시공업체에 넘겨서 만들었어요. 전주시에는 이런 사례들이 꽤 많아요. 이렇게 가로 공간들이 하나씩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예요.




전주시 공공건축물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어떤 활동들을 하셨나요?
<공공건축 설계공모 기반 구축>
총괄건축가로서 운영위원회도 만들고 공공건축가를 뽑는 과정은 다른 곳과 동일하게 진행되었어요. 그런데 지방에서 공모를 진행하면 다른 지역에서 참여를 잘 안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디자인 자체보다는 어떻게 좋은 건축을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틀을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게 되었어요. 설계 경기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팀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해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 첫 번째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전주시에서도 설계공모가 꽤 많이 나왔는데, 특히 젊은 건축가들에게 실력 있는 작품을 내면 당선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 대해 시장님과 의논하여 전적으로 실력만으로 작품이 선정될 수 있도록 심사위원의 구성이나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어요. 심사 과정을 유튜브 중계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3년 정도 지속했더니 공공건축물에 대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좋은 작품을 선정할 수 있는 기반이 어느 정도 정착된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건축가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주고 싶었어요. 공모 당선작에 대해서는 당선자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위원회를 거치면서 당선작이 많이 바뀌어버리는 게 저는 좀 못마땅해요. 건축가들이 처음에 설계한 의도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리라 생각해요. 좋은 건축과 좋은 디자인을 많이 만들려면 간혹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감수하며 끝까지 지원하고 믿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전주시에서 생각하는 예산이나 기능 및 프로그램과 안 맞는 부분에 대해서만 관여하고 디자인은 건축가들이 최대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가장 합리적인 면적과 프로그램 및 예산에 기반하여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해요.
전주시 안에 건축과 관련된 과가 많잖아요. 각 과에서 계속 계획을 세워 건축물을 발주하고 있는데 중복되는 프로젝트들도 많고 대상지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 협업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제가 조정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도서관, 놀이터, 정원 등 도시의 전반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제가 모두 자문하고 있어요. 전주시에서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더니 건축이 정말 좋아졌다고 하는 것보다는 협업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에 관심이 더 컸어요. 그렇게 3년간 진행하면서 거의 전 과에 걸친 사람들을 다 알게 되어 매주 내려갈 때마다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요. 그래서 더욱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도서관, 생태놀이에 대한 특화 지원>정원도시, 도서관, 생태놀이는 하나의 큰 맥락으로 볼 수 있어요.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서관을 벤치마킹을 하러 전주시에 올 정도로 지금은 전주시가 도서관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전주시에는 천만그루정원도시과뿐만 아니라 도서관시설과, 야호아이놀이과 등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요. 어린이 생태놀이터가 가장 먼저 생긴 곳도 전주시예요. 지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뉴스레터 2월호에 실렸던 전주시의 야호 맘껏 숲놀이터도 제가 계속 자문을 담당했었어요.
총괄조경건축가로 활동하시면서 어렵거나 아쉬운 점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알고 있어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요. 제가 생각하는 도시에 대한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이 전달되어 공무원들이 스스로 그러한 도시를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실제로 이루어지니 그분들이 친구 같고 선후배 같고 형제 같이 느껴져서 그 자체로 저는 너무 기뻐요. 또 제가 없더라도 공무원들이 이미 도시에 대한 인식과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보통 총괄건축가의 임기가 2년인데, 2년보다는 3년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 임기가 2년이었다고 하면 처음 1년 동안 공감대 형성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1년 동안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1년간의 소통하는 시간을 거쳐 이후에 2년 동안 자발적인 움직임과 프로젝트들도 생겨나고 굉장히 좋은 시간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데 3년이란 시간도 조금은 짧은 것 같아요. 사정상 연임은 어려울 것 같지만 한 번 더 연임해서 6년 정도면 도시의 기본적인 구조가 정착되고 다음에 누가 하더라도 괜찮은 도시 조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민간전문가 제도가 어떻게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총괄건축가 밑에 전담 조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일주일 내내 전주시에 있으면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하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고, 각 과에서는 각자 할 일들이 있다 보니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기가 어려워요. 전주시에서는 제 업무만 담당하는 6급 계약직 공무원을 한 명 배치해 주었어요. 그런데 그러한 인력이 2∼3명 정도 모인 팀으로 조직된다면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총괄건축가가 담당하는 일이 한두 건이 아니다 보니 직원 한 명이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총괄건축가가 이번 주에 자문한 내용을 토대로 다음 주에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총괄건축가 직속으로 꾸준히 일을 진행해 나가는 팀이 만들어진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