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쓰기의 말들
< 저자 은유 | 출판 유유>
글. 양원희


나는 미련해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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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장에서 여러 번 되뇌었던 문장이다.
‘어쩌면 나랑 이렇게 똑같을 수가...내가 미련해서 그랬던 거였구나!’
- 결혼 생활 18년째를 맞는 나는, 아직도 남편이랑 싸울 때 핸드폰 메시지를 이용한다. 나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로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일단 버벅거리고 두서가 맞지 않으며 중언부언한다. 지나고 나면 정작 중요한 말은 빼먹었다. 말하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중요한 얘기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여러 번 수정을 거쳐서 문자로 보낸다. 그게 안전하다고 나도 생각했다. 해야 할 말을 넘치게도 부족하게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순간의 감정도 조금 정리해서 다듬어진 상태에서 말할 수 있었다.
- 작가 ‘은유’의 프롤로그에서처럼 내 삶은 글에 빚졌다. 이러한 일상에서부터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까지 내 삶은 글에 빚졌다. 어려서부터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네 권의 책을 내신 수필가인 엄마의 영향도 컸다. 그래도 글 쓰는 것은 그저 나에게 막연했는데, 아나운서인 친구의 방송에 사연을 써 보내면서 작가에게 글발을 인정받았고,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나’는 없는 바쁜 삶 속에도 글쓰기 덕에 내가 나로 살 수 있었다.
- 어느 학인이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에 품위를 부여해 주는 일이라고 했다는데, 나에게는 고통에 해학을 부여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은유’라는 작가는 내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녀를 ‘작가’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단어와 문장으로 예술의 경지를 표현할 수 있는, 때로는 문장 하나로도 눈물이 핑 돌게 하는 진짜 탁월한 문장가라고나 할까. 그중에서도 이 책은 명인의 명언과 은유의 해석이 어우러져, 감정의 해방과 치유를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사실 서평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이 책에 있는 문장 몇 개 나열하는 것이, 지지부진한 나의 서평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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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을 내고 독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기존의 오염된 말로는 내 생각과 삶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작가님 삶에서 폐기된 언어는 무엇이고, 새롭게 태어난 언어는 무엇인가요?”
난이도가 높았다. 나는 오 초쯤 망설이다가 답했다.
‘애가 공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말이 사라진 것 같다고.
- 서툴고 거칠더라도 내 느낌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의 삶을 북돋우는 엄마의 언어가 만들어질 거라고 ‘은유’는 이야기한다. 안 그래도 우리 둘째 아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엄마는 다른 엄마들하고는 결이 달라요.”
- 정확한 정황과 예시는 없었지만, 그 얘기를 듣고 그래도 내가 부족하지만 아들에게는 좋은 엄마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문가나 권위자의 자녀 교육서나 육아서를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책을 접하고 여러 종류의 회사를 취재하며 글을 쓰는 과정 중에 나에게 주어진 보상이나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그렇기에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쓰기의 말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단 한 줄이라도, 일기든 다짐이든 써보았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당신의 삶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